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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및 출산/모유수유

모유수유와 아기의 기억력: 초기 수유가 중요한 이유

1. 기억력의 시초: 해마의 성장은 모유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기억력은 출생 직후부터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생후 첫날부터 뇌는 경험을 저장할 준비를 시작한다. 그 중심에 있는 해마(hippocampus)는 기억의 관문이자 저장소로, 생후 몇 개월 동안 급속히 성숙해간다.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경세포의 분화와 시냅스 형성 속도, 즉 회로의 건축 과정이다. 모유에는 이 과정을 촉진시키는 다양한 생화학적 성분—DHA, 뉴클레오타이드, 뉴로트로핀, 그리고 미세 RNA 등—이 고도로 균형 잡힌 형태로 포함되어 있다. 이 물질들은 해마 내부에서 **신경발생(neurogenesis)**과 시냅스 가소성을 촉진시키며, 해마가 외부 자극을 ‘기억 가능한 구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과정을 모유가 아닌 일반 분유만으로 대체할 경우, 해마 세포의 분화 속도나 연결 구조의 정밀도에서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실험 결과도 존재한다. 즉, 기억이라는 기능의 핵심 기관은, 모유라는 생물학적 지휘에 따라 정밀하게 구성되는 것이다.

2. 단기기억 형성의 조건: 시냅스 가소성과 수유의 관계

기억력은 단순히 정보를 오래 보존하는 능력만이 아니라, 정보의 입력과 초기 저장 과정에서의 효율성에 의해 결정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이며, 이는 뉴런 간 연결의 강도가 학습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성을 말한다. 생후 6개월까지는 시냅스가 무작위적으로 연결되다가 경험과 자극에 따라 선택적으로 강화된다. 모유는 이러한 선택적 연결을 돕는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와 같은 신경 성장인자를 다량 함유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 기억 회로를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시기의 수유는 단지 자극을 주는 행위가 아니라, 뉴런 간에 ‘의미 있는 연결’을 만들어주는 생화학적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모유수유를 통해 입력된 감각 정보는 해마와 전전두엽 사이의 반복적 경로를 통해 강화되며, 반복이 기억으로 전화되는 과정을 효율화시킨다. 따라서 초기 수유 경험은 기억력의 기술적 기반—정보 전송의 정밀도—를 구축하는 작업이라 볼 수 있다.

3. 장기기억 회로의 안정화: 모유가 만드는 정보의 지속성

아기의 기억력은 단기 저장을 넘어서, 정보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괄한다. 장기기억은 해마와 대뇌 피질 간의 협력 네트워크로 유지되며, 이때 중요한 것은 시냅스의 강화와 구조적 고정이다. 모유에는 이 구조적 안정성을 유도하는 콜린, 타우린, 포스파티딜세린 등이 포함되어 있어, 신경세포막의 안정성과 전도 속도를 높인다. 또한, 모유수유 과정은 아이의 뇌에 반복적 감각 경험을 제공하여, 특정 정보가 해마에서 대뇌 피질로 ‘전달되고 고정되는’ 과정을 촉진한다. 장기기억으로 전환되기 위해선 반복과 휴식 사이의 균형이 중요한데, 모유수유 리듬은 그 자체로 이 이상적인 주기를 형성해준다. 이를 통해 정보는 단순 저장이 아닌, 시간을 견디는 구조로 자리잡게 되며, 이는 이후 학습 능력과 정서기억의 기반으로 작용한다. 다시 말해, 모유는 단기 정보 입력을 영구적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촉매 역할을 수행한다.

4. 지속적 기억력의 파급 효과: 학습, 감정, 사회성까지

기억력은 단지 정보를 저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학습, 감정 조절, 사회성 발달을 위한 기반 구조이며, 초기 수유가 그 토대를 결정짓는다. 생후 첫 8개월간 모유수유를 받은 아동은 이후 학습 과제에서 기억 회상력, 순서 기억, 시각-공간 기억 등에서 더 우수한 성과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더 나아가, 이들은 감정 기억의 안정성도 함께 유지되며, 이는 정서적 반응과 공감 능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해마는 감정 경험을 저장하고 되살리는 기능도 담당하기에, 안정적인 수유 경험은 기억력뿐 아니라 심리적 탄력성까지도 강화한다. 모유를 통해 반복적으로 경험한 엄마의 표정, 목소리, 촉감은 아기의 뇌에 ‘기억 가능한 애착의 패턴’으로 저장되며, 이후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긍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정서적 기억으로 작용한다. 이는 결국 언어학습, 협업 능력, 문제해결력 등 다양한 고차 기능으로 확장되며, 기억력이 단순한 암기력 이상의 삶의 도구가 됨을 시사한다.